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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슬프다 (전남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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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진 저 | 문학동네 |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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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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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전 열시 이십칠분의 햇살은 오전만큼의 기울어진 그림자를 만들고
내 그림자도 그 기울기로 천천히 기울다 어느 기울기에서 사라지면
그때야 나는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그런 나는 화장실에 앉아 오늘이 월요일이란 사실에 놀라며
내가 앉아 있는 이곳에서 내 생은 짧게 혹은 느리게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가 꿈꾸지 않은 모습으로 쉴 새 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인데 _「월요일은 슬프다」 부분
부서진 빛의 조각까지도 그대 속에서 꽃의 씨앗이 된 적이 있었다.
(……)
우리가 타인에게 등을 돌린 후에도 그 사람의 향기가 오랫동안 우리를 향해 불어올 때가 있는 것처럼. _「이별」 부분
정신 바짝 차리며 살라고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지면서
못은 그만 수직의 힘을 버린다
왜 딴생각하며 살았냐고
원망하듯 못이 구부러진다
나는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살아보자고 세상에 박힌다 _「구부러진 못」 부분
1999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전남진 시인의 첫 시집 『월요일은 슬프다』를 문학동네포에지 26번으로 새롭게 복간한다. 2002년 10월 문학동네에서 첫 시집을 묶었으니 그로부터 꼬박 19년 만이다. 등단작을 표제작 삼아 선보였던 초판 『나는 궁금하다』에서 시 몇 편을 덜어내고 미발표작을 더해 『월요일은 슬프다』라는 첫 시집을 다시 내놓는다. 전남진 시인은 새천년을 앞둔 1999년 겨울 『문학동네』 동계문예공모 시 부문에 ‘시선을 끄는 경쾌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자신만의 개성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데뷔하였다. 전남진의 첫 시집이 보여주는 풍경은 스산하거나 쓸쓸하지만 그 속에 나오는 빛은 시에게 활기를 준다(신경림). 이성부 시인은 말한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것들의 삶, 소외된 사람과 사물에서 전남진 시인은 따뜻하고 치열한 시정신의 깊이를 드러내 보여준다고. 그의 시는 “우리 어려운 시대에 굳센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의 증표”라고. 초판 해설에서 황현산 평론가는 “가망 없는 자리에의 꿈, 비극으로 이루어진 이 희망” 혹은 “희망으로 만들어진 이 비극이 푸념의 시간을 넘어서는 시의 순진한 빛”을 읽는다. 시인 전남진이 돌아가야 할 진정한 집은 “현실의 시간 끝에 팬 깊은 도랑 너머에 있다”. 그 집에 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해야 한다(「지혜롭기와 순진하기」).
얼마 전 읍 단위 시골에 사는 동생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는 스무 살 즈음 다니던 대구의 프레스 공장에서 오른손 검지 하나를 절단기에 잘려, 악수를 할 때마다 뭉툭한 흉터가 내 손바닥을 지그시 눌러왔었는데, 처음엔 그것이 마음까지 눌러 아프더니, 어느 날부턴가 상처를 에워싼 거무스레한 굳은살의 뭉툭한 느낌을 뚫고 자라난 듯 보이지 않는 어떤 손가락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다정했다. 검지를 대신해 중지가 잡은 볼펜이 과일 이름이며 값을 쓱쓱 써내려갈 때, 여문 자리가 볼펜을 턱 받치고 있는 것이, 중지가 제 할 몫도 아닌 것을 덕분에 하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절, 파장 난 과일 공판장에서 고기 구워 술잔 돌 리다 팔던 수박이며 참외를 손으로 짝짝 짜개 안주 삼을 때, 그 과일도 제 속으로 들어오는 어떤 손가락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술자리마저 몇 년간 하지 못하던 차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온 것인데. 어찌 사시느냐, 아직 그 회사 다니시느냐, 자식 늘어 살기 수월치 않을 텐데…… 그런저런 안부 끝에 한 안부가 붕대 푼 손 처음 잡아 악수하던 그날처럼 마음을 또 지그시 눌러왔는데. 형님, 남는 것도 없는 서울서 뭐 그리 아득바득 삽니까. 내 밀어줄 테니 내려와서 과일 장사나 하며 설렁설렁 삽시다. 그래 어찌 나도 네가 밀어주는 과일 리어카 끌며 스리슬쩍 살고 싶지 않을까. 인호야 우리 딱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자. 그리고 죽어도 죽자.
_「과일장수 원인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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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표준 도서번호(ISBN) : 978895468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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